올해는 이직 후 면수습하고 새로운 일을 제대로 시작한 첫 해였다.
이직을 결심했을 때 새로운 도전에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안정적일 수 있는 온실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치와 캐릭터는 이 시장에서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 건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운 때가 많았다.
올해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충분히 크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2019년에는 또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내실을 채울 수 있는 1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인지 올 한 해는 그 어떤 때보다 나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된 의미있는 한 해였다.
1분기
이직 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 헤이조이스에서 ‘앞으로 5년, 내 커리어패스는?’이라는 프로젝트조이스에 참여했었다. 앞서 말했듯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내가 갈 길의 방향을 선뜻 잡지 못했고, 내 머리 속에서만 추상적으로 흩어져있는 생각들을 구체화하고 싶었다. 이때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나의 강점을 찾는 검사를 해보는 거였는데 결과는 다음처럼 나왔다.
결과를 보고 ‘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Developer Relations팀에서 나의 이런 성향들을 어떤 방식으로 발산할 수 있는 건지는 여전히 고민이었다.
그리고 3월에 Write The Docs 밋업에서 내가 시작한 DevRel이라는 일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고, 이 발표 덕분에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2분기
면수습은 했지만 여전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어졌다. 그래서 4월에 혼자 짧은 여행을 떠났고 덕분에 나의 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 ‘일하는 마음’을 읽고 라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여행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어떤 방법이 가장 적절한지 알았다.
- 일단 종이에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모두 다 쏟아내면서 적는다.
-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적고, 짧은 답변들을 적어간다.
- 그러다보면 비슷한 키워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 키워드를 보면서 내 생각을 통틀어 표현하는 하나의 문장을 정한다 => 블로그 글의 제목이 된다.
- 정리하고 싶은 내용들을 그룹핑해서 제목을 짓는다 => 본문의 제목들이 된다.
-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 쓴 글을 다듬다보면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된다.
- 내 생각이 선명해진다.
글쓰기만큼 스스로의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이 또 있을까. 내년에는 글을 꾸준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는 이 시기에 한창 ‘나는 LINE 개발자입니다‘ 원고를 받고 읽어보고 있었다. 좋은 기회로 이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내가 3년 넘게 해왔던 편집자로서의 일과 DevRel로서의 목표가 맞아서 프로젝트 기간 내내(거의 8월까지) 신나게 일했다.
3분기
이 시기에는 그 전까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은 많이 가라앉았다. 반년이 지났기 때문에 회사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이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분들과도 많은 이야기들이 쌓였다.
7월에는 헤이조이스에서 ‘내 커리어 스토리 만들기’라는 프로젝트조이스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조이스에 참여하면서 정말 좋았던 점은, 매번 받는 과제들이 내가 가진 캐릭터는 무엇이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계속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다음은 마지막 과제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정리했던 내용들이다.
- 무언가가 재미있어보이면 심장이 뛰면서 바로 일을 저지름
- 컴퓨터공학과를 나왔지만 개발자는 아니고, 개발자는 아닌데 개발자랑 제일 많이 만나면서, IT 업계 분위기를 이해하고 있음.
- 대표보다는 비선실세가 맞는 타입이라고 생각
- 자극을 주는 사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음
-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사람들과 함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자는 목표를 가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는 어떤 일들을 찐~하게 마무리해내는 데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낌
이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나리 님이 내 마지막 과제를 듣고 해주셨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혼란스러운 줄 알았는데 정리가 잘 되어있고 기준이 있는 사람 같다고. 너무나 다른 분야로 온 것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과 염려가 함께 있어 보였는데 이제는 그 연결 고리가 생겨난 것 같다고. 그리고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거 같다고.
그리고 8월에는 내가 좋아하는 파이콘을 무사히 치뤄냈다. 파이콘이 좋은 이유는 누가 뭐래도 사람이다. 이제 곧 또 새로운 분들이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에 합류하실텐데, 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야겠다.
4분기
10월이 되고 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페이스북에서 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익명이고 딱히 드리는 것도 없어서 답변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12분이나 작성해 주셔서 기뻤다. 재미있는 건 답변을 보며 어렴풋이 이 분은 나랑 어떤 일을 같이했던 분이겠구나 라는 게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과 스스로 생각하는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도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 설문조사는 내년에도 해보고 싶다.
회사에서는 우리 블로그의 Advent Calendar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블로그 유입을 늘리려는 목표도 있었지만, 사내에서 글쓰기를 통한 기술 공유 문화가 잔잔히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한 분들도 계셨다. 가이드를 드리고 찾아가서 설명하고 같이 목차도 잡고 피드백도 드리고. 본업이 있는 분들이다보니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어서 신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과 함께, 직장인이면 누구나(…) 도전한다는 유튜브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아니 근데 이거 아직 올라가려면 한참 남은 거 같기도 한데 자꾸 말만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몰라… 말을 해야 하는 줄 알죠 그쵸? coming soon…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강화도에 와있다. 강화도는 무슨 마법의 힘을 가진 곳이길래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깨달음을 주나…? 글 쓰는 동안 과거는 잘 정리했고, 내년을 위한 스스로의 action item(ex. 영어 공부)은 언제나 비슷하고.
단단해질 수 있었던 2019년에 감사하며 새로운 2020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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