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인생 처음으로 본격 팀장이 되었다. 그전에도 커뮤니티 파트를 맡고 있었지만 새롭게 맡은 Dev-Contents 셀은 좀 더 전통적인 팀장 역할에 가까웠다. 언젠가 리더가 된다면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도 몇 권 읽었었는데, 실전은 처음이니까 부족한 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년 회고에도 썼듯이 그동안 너무 비워내는 일만 해왔기 때문에 무언가 내실을 채울 수 있는 활동이 절실했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된 계기
마침 팀장이 된 시기와 비슷하게 헤이조이스에서 팀장 온보딩 스쿨이라는 강의가 열려서 수강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갈증은 있었다. 그러던 3월의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이하 AFA)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그동안 비영리 업계의 중간 관리자만을 대상으로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영리쪽 전문가도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 생겼다. 지금의 나에게는 리더십 교육이 필요하고, 언젠가는 내가 속한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비영리 재단 같은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딱 적합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류 지원 마지막 날인 3월 12일에 간신히 제출하고 4월 초에 서류 합격, 4월 13일에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선발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대표님과 HR에도 미리 공유를 했다. 만약 합격하게 된다면 5월부터 11월까지 무려 7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교육을 들으러 역삼으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최종 합격하고나서도 이게 진짜 맞는 걸까 고민했었다. 새롭게 맡게 된 Dev-Contents 셀의 팀장 역할, 기존에 맡고 있던 커뮤니티 파트의 팀장 역할, 여기에 인프콘 TF까지 리딩해야하는 상황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자리를 비우고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게 맞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교육비 전액 무료에 회사(=대표님)도 오케이해준 마당에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되겠냐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렇게 고통과 기쁨이 함께 하는 강제 성장(ㅋㅋㅋㅋ)의 7개월이 시작되었다.
AFA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나
AFA는 비영리 업계의 MBA라고 불릴만큼 양질의 교육과 훌륭한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대략 아래와 같고 개인적으로 의미있었던 프로그램에 새싹 표시를 해두었다.
- 임팩트
- 캡스톤 🌱
- 전략
- 리더십
- 브랜딩
- 프로젝트 🌱
- 글로벌 스터디 🌱🌱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제공해주는 자료도 풍부하고 교수님들도 진짜 업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계신 멋진 분들이셨다. 이번 교육을 들으면서 나는 구체적인 액션이 수반된 프로그램을 좀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캡스톤, 프로젝트, 글로벌 스터디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된 것들이 많았다.
캡스톤
캡스톤 수업은 나에게 좋은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문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일’과 ‘사람’의 ‘패턴’을 파악해서 상황에 맞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수업이었다. 필기했던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적어둔다.
- 좋은 리더십은 게임 안에서 뛰면서 게임 밖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 일이 해결되는 패턴을 이해하면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모르는 일을 해내는 데 익숙해진다.
- 논리로 가능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때 논리로 가능하지 않은 차원의 성취를 얻는다.
- 회고는 문제 해결을 위한 판단력의 해상도를 높인다.
-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면 어디서 관찰/인식/개입이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본다.
특히 캡스톤 수업 중에 서로의 리더십 실패 사례를 돌아보고 어떻게 다르게 대응할 수 있었을지 함께 토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내가 추구하는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역시 ‘회고’는 언제 어디서든 도움이 된다.
글로벌 스터디
AFA는 글로벌 스터디에만 1인당 400만원을 지원해준다. 우리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기관을 찾아 영국과 네덜란드를 방문했고 덕분에 처음으로 서구권 여행을 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아 좀 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와볼걸’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진짜 사소한 사례인데 암스테르담에서 기관 방문을 마치고 재즈바에 갔을 때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온 이스라엘 여성분이 있었다. 여행 도중 전쟁이 일어나서 귀국할 수가 없었고 오늘 자신의 나라를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는데, 그동안은 체감하기 쉽지 않았던 글로벌 이슈를 가까이에서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기관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는 국내만 한정해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곳에서는 글로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생각이 확장되는 범위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찐 글로벌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데 난 영어를 잘 못하니까 일단은 인프런을 글로벌로 키우고ㅋㅋㅋㅋㅋㅋ 그동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하하하!
프로젝트
AFA에 참여하면 7개월 동안 하나의 팀 프로젝트를 마무리해내야한다. 수업에서는 맥킨지 7-steps 방법론을 기반으로 차곡차곡 근거를 쌓아 올리는 연습을 하는데, 팀의 액션 우선 순위를 정할 때 ‘임팩트’와 ‘실행 가능성’을 기준으로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큰 수확인 것 같다.
근데 이런 방법론적인 것과 별개로 실제 프로젝트는 진짜 혼돈의 카오스였다ㅋㅋ 처음 프로젝트 시작할 때만해도 우리 팀은 비영리 업계의 고용 비중을 높이는 일을 목표로 잡았었는데 다양한 분들의 자문을 받고 글로벌 스터디를 다녀오면서 목표가 조금씩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임팩트 지향 조직(비영리 조직)과 전문가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프로젝트로 확정되었다.
프로젝트의 첫 프로토타입으로 IT 전문가와 비영리 조직을 사이드 프로젝트 기반으로 연결하는 웨비나 기획을 맡아서 진행했는데 발표자분들의 이야기가 정말 유익했다.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뻗어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업계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에게 AFA가 남긴 것은
7개월 간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리더십 교육을 듣는 이유는 회사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함이었기때문에 업무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회사 일정이 겹치면 어쩔 수 없이 수업에 지각하기도 했고 결석하기도 했다. 비록 사무실에서는 자리를 비우지만 팀원들의 슬랙 멘션에는 언제든 대답하겠다고 약속했었고 가끔은 뇌를 양쪽에 갈라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충분히 얻었고,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은 끝까지 해냈다. 8월에 인프콘 준비하느라 한창일 때 중간 워크샵 발표 맡으면서 청평 당일치기 왕복 택시비 20만원을 쓰고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아참 근데 외국 나갈 때 총무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 중 제일 힘들었다ㅠㅠㅋㅋ 덕분에 많이 배우긴 했지만…
이번 경험들을 통해 나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내가 리더로서 부족한 점, 잘하는 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고 어떻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7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며 고된 시간을 함께 보낸 소중한 팀원들을 얻어서 감사하다. 암튼 당분간은 교육 같은 건 그만 듣고 (올해 너무 많이 채움ㅋㅋㅋㅋ)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볼 예정이다. 주기적인 회고 모임을 열어볼까 싶은데 요건 새해에 시작해봐야지.
고생고생했던 AFA!!!! 회고도 다썼으니 이제 진짜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