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콘 2022가 끝난지 보름 정도되었다. 지난주에 발표 영상 공개 준비하고 내부용 리포트도 아직 정리 중이다보니 그다지 끝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운영팀 회고는 조만간 발행될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소감은 따로 기록해두어야 할 거 같아서 글을 써본다. (쓰고 보니 길다..)
인프콘 준비 시작
인프랩 합류 전부터 인프콘 준비를 맡기로 했었기 때문에 팀에 어느정도 적응되었을 때부터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입사 n개월차 기념으로 쭈랑 밥먹는데 “인프콘 언제부터 준비해요?”라고 묻길래 그 다음날 당장 코엑스에 문의 메일부터 넣었다. 그때 8월 26일 그랜드볼룸, 10월 초 3층 컨퍼런스룸 딱 이렇게만 남았다는 회신받고 쫌 좌절했었다. 개발자 행사의 상징성 측면에서는 당연히 그랜드볼룸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정이 정말 엄~~~청 빡빡했었기 때문이다.
C 레벨분들한테 대관 관련해서 먼저 의견 구하는 메시지 쓰면서도 속으로는 약간 답정너였던 거 같다. 나는 이거 할 거면 진짜 제대로 하고 싶은데 그랜드볼룸 아니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거든…ㅋㅋ
대관한 다음에는 프로젝트를 함께할 운영팀 팀원(a.k.a 갈릴레오)들을 모아야했다. 사내에서 자원을 받고 쭈와 논의해서 팀원을 선정했다. 그때 팀 이름을 ‘갈릴레오’로 지었는데 진짜 빡빡한 일정이어서 엄청 갈려나갈 거 같아서 그렇게 지었다. 이거 이름 따라 가니까 누가 내년에는 팀 이름을 ‘꿀빨레오’로 바꾸라고 해서 팀원들이랑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팀원을 모집하는 동시에 전반적인 프로젝트 일정을 짰다. 파이콘 준비위원회 4년하면서 ‘개발자 컨퍼런스 준비’라는 프로젝트를 어느정도는 해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혼자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서 잘 모르는 부분이 꽤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냥 내가 사회생활 시작한 이후에 겪었던 모든 경험들을 총망라해서 다 때려넣은 게 이번 인프콘 프로젝트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인생에서는 버릴 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인프콘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
이번 인프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뤄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1) 개발자 생태계 측면: 인프콘을 개발자들의 축제로 만들고 싶다
행사 준비하면서 팀원들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이 행사에 오는 사람들이 많은 걸 얻고 즐겁고 뿌듯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열리는 오프라인 행사인만큼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걸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었는지는 아마 운영팀 회고 글에 담길 거 같아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물론 회사의 서비스를 행사에 녹여내는 것도 당연히 중요했다. 억 단위 프로젝트인데 그냥 하하호호만 하고 끝낼 순 없잖아… 암튼 중요한 건 개발자 생태계에 속한 사람들이 즐거울 모습을 생각하며 일하는 자체가 프로젝트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건 어느정도 자부심 섞인 말인데 ‘진심’으로 개발자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며 일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고, 그 가장 선두에 인프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프랩 입사 전에 생각 정리해서 쭈에게 공유했던 문서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이 내용이 진짜라는 게 명확해져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개발자들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 바랐던 또 한 가지, ‘돌아온 오프라인 컨퍼런스’ 키워드를 가장 먼저 선점하고 싶었다. 이건 개발자 생태계 측면이라기보다는 좀 나의 욕심 같긴 한데 ㅋㅋ 한동안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개발자 컨퍼런스를 오프라인으로, 심지어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그것도 우리가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타이틀을 다른 어떤 회사보다 먼저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프콘 킥오프 회의하자마자 가장 먼저 티저 페이지 오픈을 위한 리소스를 모았고 인프런과 별개의 인프콘 SNS를 생성하고 보도자료 배포도 준비했다. 한 번에 빵 터트리고 싶어서 그 전까지 웬만해서는 인프콘 준비한다고 어디에 말도 잘 안했다. 결과적으로는 코로나가 아주 많이 심해지지는 않아서(걱정 많이 했다ㅜㅜ) 다행히도 그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던 거 같다 ㅎㅎ
2) 회사 측면: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싶다
회사의 큰 행사인만큼 모든 인프랩 구성원들이 이 행사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아래는 행사 준비 과정에서 신경썼던 부분들인데 사소한 것도 있고 굵직한 것도 있다.
- 전사 주간 회의에서 인프콘 준비 과정 자주자주 공유하기
- 슬랙 잡담방에 인프콘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소식 공유하기
- 주요 업무 마친 후 해당 업무에 기여한 구성원들 이름 언급하고 감사 인사하기
- 인프런 부스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재미있을지 모든 구성원에게 의견 받기
- 인프콘 업무 조금이라도 발 걸친 사람들 다같이 회식 자리 만들기
- 인프콘 당일에 한 사람이 최소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도록 준비하기
- 인프콘 당일에 현장 스케치 사진 말고 구성원들 일하는 모습 사진 찍어주는 역할 따로 두기 (행사 운영팀은 사진에 잘 안남기 때문이다)
- 인프콘 당일에 꼭 단체사진 찍어서 우리 모습 남겨두기
부족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구성원들에게 이런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3) 개인 측면: 무에서 유를 만드는 프로젝트 리딩 경험(의사 결정 경험)을 쌓는다
예전에 이직썰 푼 글에서도 썼지만 나는 많이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높이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왔다. 그래서 더 연차가 쌓이기 전에 스스로 의사 결정하는 경험이 너무 필요했고 이번 프로젝트를 리딩하면서 정말 원없이 의사 결정…했는데 아 이거 진짜 어렵더라.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함께 준비하는 팀원들의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도 잘 녹여내고 그러면서도 회사가 가고자하는 방향에도 부합해야했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개발자 행사 레퍼런스야 많았지만 인프랩이 할 수 있는 인프랩만의 컨퍼런스는 세상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의사 결정이 더 어려웠던 거 같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게 진짜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빠른 속도로 모든 걸 결정해야했다. 열심히 고민하다가 이건 회사 차원에서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될 때는 바로 쭈를 찾아가서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프로젝트를 혼자 하는 게 아닌 팀원들과 함께 해내는 경험이었다.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 C 레벨 외에는 상하구조가 없기 때문에 나는 ‘팀장’보다는 ‘의사 결정하는 PM’으로서 프로젝트를 리딩했다.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각자 맡고 있는 일들이 잘 돌아가도록 서포트와 피드백을 하고, 일정/예산 관리하고, 업무나 업무 외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묻는 일 등등 여러 일을 했다.
솔직히 이런 역할 먼저 해볼 수 있어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아직 넘 쪼렙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팀장님’은 팀원들 하나하나 보듬어주어야할 거 같고 뭐 모른다고 말하면 안될 거 같고 어디가서 속이야기도 잘 못하는 찐 ‘상사’의 느낌이라서… 나는 우리 팀원들한테 힘들다고 징징대기도 했고 속이야기도 주절주절 다했기 때문에 ㅠㅠㅋㅋ 암튼 좋은 경험이었다는 이야기.
마치며: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믿음’과 ‘용기’
팀원들과 회고하다가 누군가 이번 프로젝트는 ‘용기’가 많이 필요했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정말 많이 공감했다. 위에서 되게 멋진 척하면서 구구절절 적었지만 진짜 솔직히 말하면 이 프로젝트하면서 겁날 때도 많았다. 회사에서 여러 명의 팀을 리딩해보는 것도 처음이고, 몇 억짜리 프로젝트도 처음 해보고, 걱정 많아서 작은 세미나 하나 할 때도 이슈 상황 미리 생각하느라 계획 엄청 준비하는 스타일이란 말이다.
이 프로젝트 잘할 수 있다고, 나니까 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혼자) 자신감 넘치다가도, 일정이 몰아치는 날에는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슬며시 파고들어 나를 괴롭혔었다. 그럼에도 결국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서로 든든하게 믿어주는 팀원들과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함께여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 그리고 C 레벨 쭈와 향로의 믿음도 엄청난 용기를 주었다. 이만큼 큰 프로젝트를 이렇게나 우리를 믿고 위임해주다니. 쭈가 페이스북에 공유해준 인프콘 후기에서 위임에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 적어주었는데, 내가 나중에 누군가에게 일을 제대로 위임해야할 때 이 말들을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 글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나 길어져버렸다. 빡센 5개월이었어서 그런지 개인 회고에 뭔가 더 쓸 게 많은 거 같은데 더이상 잘 떠오르진 않는다. 스트레스 안받았다고 하면 뻥이니까 그런 말은 안하겠다. 개인적으로도 회사적으로도 꽤 뿌듯한 프로젝트였다. 근데 나 포함 팀원들 건강이 안좋아진 건 속상하다. 야근도 많이 했구… 내년에는 야근 좀 덜 하면서 더 크게 더 재미있게 더 의미있게 만들어야지.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