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자존감이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이직 준비하면서 보았던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죠?”

자신감도 아니고 자존감,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도 아니고 ‘높은 편이죠?’라는 질문이라니.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네. 높은 편입니다.”였다(물론 목소리 크기는 조금 줄어들긴 했다).

자존감(自尊感)의 각 한자를 보면 ‘스스로 자’ ‘높을 존’ ‘느낄 감’. 스스로를 높이 여기는 마음이다. 나를 높이 여긴다는 건, 나를 믿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왜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을까.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한 이유


나는 자존감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 자존감 중 6할은 첫 번째 직장에서, 4할은 나와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직장은 인원이 많지 않은 출판사였는데 내가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다. 의욕에 불타는 신입사원은 별의별 일을 다 벌였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책 내보자며 기획안을 쓰지를 않나, 잘 돌아가던 대학생 서포터즈 규모를 왕창 늘려서 사무실로 전부 초대해 놓고 별다른 소득도 없이 치킨에 맥주를 먹으러 가질 않나, 초연결사회에서는 일방통행인 홈페이지 대신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며 네이버 카페를 만들겠다고 조르질 않나…

신기하셔서 그랬던 건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첫 직장의 대표님과 선배님들은 정말 말 그대로 ‘오냐오냐’해주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3년쯤 일하고 보니까 느낄 수 있었다. 철모르고 날뛰던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셨기 때문에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 다음에 새로운 일을 도전할 때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 ‘내가 이걸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라고 생각할 만큼의 기댈 구석이 있었고, 점점 나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쌓여갔다.

 

오늘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


사실 요즘 일이 많다. 굉장히 다양한 범주의 새로운 일들을 하고 있다. 기술 블로그나 행사를 통해 LINE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여러 일들, 제대로 다뤄본 적 없던 Google Analytics나 메일침프 같은 도구들을 공부하며 쓰기도 하고, 조금 더 대중적인 방법으로 LINE 개발자들을 알리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일의 가짓수가 너무 다양한 게 어려운 점 중 하나이긴 하다.

오늘은 밤 11시쯤 퇴근해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먹으면서 걷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은 너무너무 피곤한데 정신이 너무 충만해!!!’

일이 너무 많지만 모두 내가 원해서 스스로 벌인 일들이다(LINE은 이게 가능하다). 누군가 나에게 강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해내는 것 자체가 나에게 기쁨을 준다. 출퇴근까지 자유롭다 보니 일과 생활 전반에서 나의 선택권을 온전히 보장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직장에서 나를 나로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 역시 나의 자존감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나는


나의 자존감은 ‘전적인 믿음을 받는 것’과 ‘나의 선택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자라났다. 그렇다면 반대로 누군가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려면 전적인 믿음을 주고, 그 사람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면 되는 걸까?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내가 나중에 누군가의 사수,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면 내가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었던 이유들을 꼭 느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나저나 이 글을 쓰다보니…  자존감을 높여주는 회사들에서 일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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